[기사/리뷰]

류미례 감독 '마음을 잃지 않는 방법에 대하여' 

김정근 감독 <그림자들의 섬>

교육부 고위 공무원이 “민중은 개 돼지와 같다”라고 말한 것 때문에 세상이 시끄럽습니다. 반응들 중에는 난데없이 개 돼지 취급을 당한 보통 사람들의 분노가 대부분이지만 ‘나와 내 가족만 챙기느라 불의와 싸우지 않으니 개 돼지 소리 들을만 하다’는 냉소도 간간이 섞여 있습니다. 이러한 냉소는 언뜻 자기비판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이웃을 비난하는 마음이 더 강한 것같아 안타깝고 답답합니다.

김정근 감독의 <그림자들의 섬>을 다시 보았습니다. 2014년 제 40회 서울독립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은 이 영화를 다시 꺼내본 이유는 반갑게도 올 8월에 개봉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림자들의 섬>은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의 어제와 오늘을 담아낸 다큐멘터리 영화입니다. 주인공들은 꿈에 그리던 ‘조선소맨’이 된 것에 가슴 벅차했지만 살인적인 노동강도와 열악한 환경에 고통받다가 19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인간적인 삶을 열망해온 사람들입니다. 30여 년 동안 네 명의 동지가 죽어갔고 309일 동안 고공농성을 견디기도 했습니다. 지나온 삶이 곧 한진중공업의 역사이고 그들의 기억이 이 땅 노동운동의 결정적 순간이 되는 인물들이 이 영화에는 다수 등장합니다. 김진숙, 박성호가 그렇고 박창수, 김주익, 곽재규, 최강서가 그렇습니다.

인터뷰와 자료화면이 주가 되는데도 이마가 뜨끈뜨끈해질 정도로 이 영화에 몰입하게 되는 이유는 그 이야기들이 우리가 지나온 시간과 강렬하게 겹치기 때문입니다. 박창수 위원장이 치료를 위해 입원했다가 병원 마당에서 시신으로 발견되었던 1991년 5월 6일은 새내기 대학생 강경대가 죽은 지 열흘 후의 일이었습니다. 항의시위와, 그 죽음을 잊지 말자는 새로운 죽음들이 이어지면서 정국은 뜨겁게 달아올랐습니다. 국가권력은 박창수 위원장의 의문의 죽음이 더 큰 싸움으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는지 영안실 벽을 뚫고 시신을 탈취하는 악행을 저지릅니다. 한겨레신문에 게재되었던 그 사진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이 생애에서 내가 겪은 일이 맞는가 의심할 만큼 충격적이었거든요.

2003년, 35미터 높이의 85호 크레인에서 129일째 고공농성을 벌이다 목을 맨 시신으로 발견된 김주익 지회장의 이름을 들으면 늘 바퀴달린 운동화 휠리스가 생각납니다. 동지들에게는 “이 투쟁이 승리할 때까지 나의 무덤은 크레인이 될 수밖에 없다”며 죽어서라도 투쟁의 광장을 지키겠다는 굳은 다짐을 남긴 투사였지만 아이들에게는 휠리스 사준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해 한없이 미안한 아빠였습니다. 남겨진 아이들에게 그 아버지를 대신해 선물을 한 이들은 평범한 어머니와 노동자들이었고 역시나 고인이 된 정은임 아나운서는 이 소식을 전하며 이들에게 덧씌워진 노동귀족이라는 허울을 강하게 비판했었지요.

그리고 2011년 1월 6일, 민주노총 김진숙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김주익 지회장이 올랐던 85호 크레인에 다시 오릅니다. 김주익의 20년 지기인 김진숙이 “죽음을 생각지 않고 크레인에 올라가는 노동자는 없다”라고 담담하게 말할 때 김주익과 김진숙과 그리고 그 때 이후 지금까지 기록을 갱신해가며 이어온 고공농성의 현장들이, 그 결연한 얼굴들이 아프게 떠오릅니다. 스타케미칼 차광호, 기아차 비정규직, 쌍용차 해고자, 티브로드 노동자……. 다행히 김진숙은 살아서 내려왔습니다. 살아서 내려온 김진숙은 눈물 고인 눈으로 웃으면서 말합니다. “주익씨도 이렇게 걸어 내려왔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김진숙은 85호 크레인 위에서 트위터로 상황들을 생중계했고 그 말들이 사람들 사이로 퍼져나가서 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희망버스를 타고 영도를 찾았습니다. ‘김여진과 날라리 외부세력’을 비롯한 수많은 시민들의 지지와 연대에 힘입어 ‘노동자 400명 정리해고’ 입장만 고수하던 한진중공업 사측은 타협안을 내놓습니다. 1년 후 재고용과 휴직 기간 내 1천만원 지급. 영화 속에서 이 소중한 승리를 알리는 자막의 배경화면은 빗방울 떨어지는 거리입니다. 그 거리는 1년이 지난 후에도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측에 저항하는 천막농성장 앞입니다. 자본과 노동의 싸움에서 영원한 해피엔딩은 없겠죠. 자본은 더 치밀하고 더 교묘하게 노동자들을 조여오고 있고 노동자들은 두 개의 노조로 분열된 상태입니다. 한때 동지였고 함께 싸워왔던 사람들이 사측의 이해를 대변하는 노조를 만들고 그 노조에 절반이 넘는 노동자들이 가입한 상황에 대해 누군가는 배신감을 토로하며 절대 용서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김진숙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 사람들이 어떤 지점이 약하고 어떤 게 이 사람들한테 가장 절박한 문제라는 것을 회사는 너무너무 잘 안다……. 나는 그 가는 조합원들을 원망하지 않는다”
그래서 500명 넘는 사람들이 복수노조로 갔다는 데에 절망하는 게 아니라 그런 상황에서도 남아있는 이 200명의 조합원들을 믿는다고, 이 사람들은 대단한 사람들이라고 김진숙은 힘주어 말합니다.

머나먼 영도, 잘 알지도 못하는 조선소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저는 지금 쓰고 있습니다. 그들의 투쟁이 제 삶의 국면마다 강렬한 인상을 남겨서만은 아닙니다. 떠나간 사람에 대한 원망보다 남아있는 사람들에 대한 믿음을 강조하는 김진숙 지도위원의 말이 너무나 소중해서 같이 나누고 싶었습니다. 

2003년, 김주익 지회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후 한 달이 채 안되어서 곽재규 열사가 목숨을 끊습니다. 병든 부모와 생활고 때문에 투쟁에 동참하지 못했던 곽재규 열사는 김주익의 죽음에 너무나 가슴 아파하며 통곡했다고 합니다. 떠나간 조합원들을 원망하지 않는다는 김진숙 지도위원은 “내가 속이 좋아서가 아니다”라고 단언합니다. 30여년의 세월동안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또 떠나보내며 김진숙 위원은 진심을 알아보는 눈을 얻은 것같습니다. 

마지막으로 김진숙 위원의 이 말을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마음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그 때 어떤 마음으로 싸웠는지, 어떤 마음으로 울었는지, 어떤 마음으로 그 사람들을 땅에 묻었는지 그걸 잊지 않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개 돼지와 같다”라는 말을 들어도 괜찮은 민중은 없습니다. 지금 나와 같은 자리에 있지 않더라도 언젠가는 함께 할 날이 올 겁니다. 그냥 시간만 간다고 그 날이 저절로 오지는 않겠지요.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을 소중히 여기며 세상은 선의로 가득 차 있으니 그 선의가 발현될 계기를 만들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겁니다.

 냉소에 빠지지 않으며. 일단 <그림자들의 섬> 극장개봉을 도와주세요. <그림자들의 섬>을 전국 극장에 거는 순간, 새로운 사회로의 도약은 시작됩니다.

(문의:시네마달 02-337-2135. 소셜펀치 http://www.socialfunch.org/shadows )